
“다른 나를 원하나요?”… 외모 집착 사회에 던지는 거울
영화 서브스턴스는 실제로도 과다한 성형중독으로 이상해진 얼굴과 몸매의 데미무어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데미무어는
예전 고스트에 나왔던 짧은 커트머리에 우수에 찬 눈빛과 베이비 페이스의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독보적인 느낌의 배우였는데
어느 순간 젊을 때의 그 모습에 집착하는 건지 브루스윌리스와 이혼 후 과한 성형집착을 보이면서 가십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실제 상황과 상당히 유사한 영화 서브스턴스에 출연한 것일까
확실히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듯하다 멘털이 일반인들과는 매우 다르고 독특하다. 그런 그녀의 출연과 연기력으로 서브스턴스는 더 생동감 있고 실제적인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한 바디호러 영화가 아니다. 외면과 내면,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과 자아 사이의 괴리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페미니즘 스릴러다. 영화는 한때 스타였지만 늙고 버려진 여성 주인공(데미 무어)이 ‘서브스턴스’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을 통해 젊고 완벽한 자신(마가렛 퀄리)을
만들어내며 시작된다. 이 설정은 신체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실제 영화는 육체보다 훨씬 깊은 곳,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의 본질을 파고든다. 관객은 이 극단적인 ‘신체 분리’를 통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규정해 왔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젊고 아름다운 육체는 사회적 성공과 사랑을 가져오지만, 원래의 자아는 점차 파괴되고 지워진다. 〈서브스턴스〉는
“다른 모습이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관객에게 섬뜩한 거울을 들이민다. 그 거울엔 현실 속 우리가 비추고 있는 허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50이 넘어서
아직까지 현직에서 일을 하는 나 역시도 나보다 젊고 어린 후배들을 보면서 영화 속 데미무어 같은 느낌을 스스로 많이 받는다.
영화 속에 데미무어는 자신의 커리어보다는 자신의 늙어감으로만 그동안 해왔던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한다. 차라리 커리어나 능력이 없어서 밀린다면 납득이 갈 텐데
단순히 늙었다는 이유로만 평생 쌓아온 자리를 박탈당한다면 그 상황을 흔쾌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우리
모두가 특히 나이가 들어 갱년기를 맞이하는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요즘 같은 현실에서는 예전 은퇴의 나이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사회생활을 하는 중년 직장인 여성들에게 감정이입을 시키며 데미무어가 겪은 억울함과 박탈감에 똑같이 질문을 던진다. 다른 나 젊어진 나를 당신도
원하나요? 답은 하지 않겠다. 너무 뻔한 답일 테니까. 어쩌면 저런 질문을 왜 하지?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이런 생각들로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계속 끌고 나간다.
바디호러의 미학, 혐오와 매혹의 경계에서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은 ‘보여주는 방식’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여성 신체에 대한 기존 공포영화의 대상화 시선을
거부하고, 여성의 눈으로 보는 고통과 욕망을 시각화한다. 장면 곳곳에 등장하는 신체 변형, 분리, 재조립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강한 미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특히 데미 무어가 연기한 인물의 신체적 붕괴와 정체성 혼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서브스턴스〉는 ‘몸의 해체’를 통해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얼마나 남아야 내가 나일 수 있는가? 여성의 삶을 신체적 아름다움으로 만 환산하려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넘겨주며 점점 존재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비극을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잔혹하게, 차갑고도 아름답게 묘사한다. 이는 단순한 바디호러를 넘어, 예술적 공포이자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정체성 해체와 여성 서사의 진보
〈서브스턴스〉는 최근 공포영화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단순한 자극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와 장르적 실험을 결합한 작품으로,
아리 애스터나 제니퍼 켄트 이후 바디호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이 영화는 여성 서사의 진보를 보여준다. 남성 중심적 시선이 배제된 상태에서 여성 주체가 스스로를
바라보고, 해체하고, 결국 폭발하는 이야기 구조는 지금까지의 장르 영화에서 보기 힘든 서사이다. 영화 속 ‘두 여성’은 결국 하나의 자아이며, 아름다움과 인정 욕구, 사회적
성공과 고립이라는 양극단을 체현한다. 결말부에 다다를수록 영화는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통해, 진짜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혹은 지워가고 있는가?” 〈서브스턴스〉는 불쾌함과 아름다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단순한 공포가 아닌 ‘존재의 해체’를 체험하게 만드는 강렬한 작품이다.